첫 부인 마리야가 죽고 난 후 안나 고르빈-크루코프스카야와 마르타 브라운을 상대로 한 재혼 시도에서 잇달아 고배를 맛본 후 도스토옙스키는 또다른 재혼 대상으로 유럽에 있는 수슬로바를 떠올리고는 그녀를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.그러면 도스토옙스키가 이처럼 재혼에 매달린 이유는 무엇일까? 아마도 첫 부인 마리야와 유일한 의지처였던 형 미하일을 잇달아 잃은 후의 상실감과 외로움이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다. 시베리아 옴스크에서 혹독한 유형생할을 마친 후 세미팔라틴스크 군 복무 시절 느꼈던 여성에 대한 사랑의 뜨거운 갈망이 다시 세차게 솟아올랐
마리야와 형 미하일이 잇달아 죽은 1864년은 도스토옙스키에게 매우 힘든 한 해였다. 도스토옙스키는 1864년 후반부터 다음 해 초에 걸쳐 두 사람의 여성을 상대로 재혼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.두 여성의 이름은 안나 바실리예브나 고르빈-크루코프스카야와 마르타 브라운이다. 그 중 안나 고르빈-크루코프스카야는 두 번째 부인이 된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회고록에도 자세히 기록될 만큼 도스토옙스키와 우정의 관계를 오래 유지한 특이한 케이스다.안나 고르빈-크루코프스카야는 도스토옙스키가 운영하던 〈세기〉 잡지에 원고를 보냈던 문학소녀였다. 단편소